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틴 루터 (문단 편집) === 어록 === >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자들의 공갈 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떼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더 원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95개조 반박문]]에서 >'''"우리는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의 권위'로 대체한다."''' >---- >종교개혁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문구로 평가 받는다. > '''"진리는 교황의 주인입니다."''' >---- >1518년 성경의 해석 권한은 교황에게 있으며 그 해석은 틀릴 수 없다는 카예탄 추기경의 주장에 반박하며 >Verbum Dei manet in aeternum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도다.) >---- >루터의 어록은 아니나 1526년 슈파이어 제국회의에서 루터파 제후와 도시들의 구호 >왜 자기들은 신발에도 안 바르는 저질 올리브유를 우리에게 강요하는가? 고기, 우유, 버터만 안 먹는 게 과연 금식인가? 그리고 버터를 먹는 것이 도둑질이나 신성모독보다 더한 죄악이라는 엉터리 교리를 그만 가르쳐라. >---- >1520년, [[가톨릭]]의 금육재 교리를 비판하면서 남긴 말 >나는 술을 많이 마십니다.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그러나 다른 사람은 나를 따라해선 안됩니다.]]() 저처럼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죽어있는 것에는 술을! 살아있는 것에는 물을! 이것은 물고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노동은 삶이다. 그러나 절반의 삶이다. 우리는 7살까지는 먹고 자고 놀고 싸기만 한다. 일생 중에 일한 것은 겨우 10년일 뿐이다. 내가 오늘 무얼 하고 지냈나? 2시간은 똥을 싸고, 3시간은 밥을 먹고, 4시간은 빈둥거렸다. >보헤미아인들은 먹어대고, 벤트인(서슬라브계 소수민족)은 도둑질하며, 독일인은 기운차게 마셔댑니다. 이상 먹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1518년에 루터를 관찰한 사람은 '수도생활에 얼굴뼈의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랐다'고 표현했는데, 훗날에 전하는 루터의 중장년 그림은 죄다 뚱보다. >설교자들은 설교단에서 "젖을 꺼내서 민중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 >설교자는 입속에 이빨을 갖고 있어야 하며, 깨물고, 소금치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공격한다면 분쟁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저는 긴 설교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경청하려는 청중들의 욕망을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강한 자를 억누르고, 복음은 약한 자를 위로합니다. > 제가 믿음을 그토록 강조하며 그러한 신앙 없는 행위를 질책하면. 그들은 제가 선행을 금지했다면서 제게 책임을 씌웁니다. 제가 당신에게 믿음의 진정한 선행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했음에도 말입니다. >---- >≪선행에 대한 설교 ''Sermon vondem guten Werken(1520)≫ >''Wenn ich wüsste, dass morgen der jüngste Tag wäre, würde ich heute noch ein Apfelbäumchen pflanzen'' > 내일 이 땅에 심판이 날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근거가 확실치 않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31|2차대전 이후]] 루터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루터가 했음직한 발언으로 추정한다. 어째서인지 한국에서는 [[바뤼흐 스피노자]]가 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 전쟁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하며, 많은 것을 잃고 모든 것을 겁니다. 그러나 온순한 성품은 아무 것도 잃지 않으며, 별로 많은 것을 걸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얻습니다. >---- >동료 멜란히톤과 함께 작센 선제후에게 전쟁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공동 탄원서 >가장 힘든 유혹은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왜?''' 라는 질문은 모든 성자를 괴롭힙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 그 자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 >탁상 담화 >우리는 거지같은 존재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 >죽기 전 마지막 메모 루터 어록들은 생전부터 워낙에 달변이었고 직설화법과 모순화법 욕설도 마다하지 않고 돌직구를 매번 날렸기 때문에 추종자들과 안티들이 서로 퍼다 나르기 바빴다. 탁상담화라 하여 루터의 어록들을 모아놓은 책도 곧 출판 되었는데 대부분은 출처의 신빙성은 약간 의심스럽지만 당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5종 정도의 탁상담화본은 루터의 저작만큼이나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대부분의 어록은 루터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루터는 평민출신이었고 엄숙함과 고리타분한 예법을 무시했다. 실제로 루터 전집의 예배와 설교 때 한 말들을 읽어 보면, 문자 그대로 [[교황]]이나 [[가톨릭]]의 관습, 혹은 악마의 유혹 등에 대해서 "내 똥이나 처먹어라"라면서 온 가지가지 [[패드립|상스러운 말과]] [[섹드립|비유]], [[육두문자]]를 쏟아 내고 있다. 루터의 (좋게 말해서) 서민적이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 당시 무지몽매했던 대부분 신자들이 잘 알아먹을 수 있도록 일상적인 언어로 이런 저런 욕까지 섞어 가면서 설교를 했던 그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상당히 충격이 클 법도 하다. 2003년에 개봉된 영화 <루터>에 보면 루터의 서민적인 면모를 아주 잘 엿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유럽 지식, 문화사 전반적인 궤도에서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이 가지는 의미가 중세 말 인문 [[르네상스]]의 세계에서 16세기, 17세기의 종교 대립의 시대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건데, 위의 유대인 관련 일화만 해도 볼 수 있듯이 중년 이후 본격적인 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인문 르네상스의 유연하고 관용적인 태도야 사라졌지만, 루터 또한 학문적인 토대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문헌 해독학과 신앙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위의 문맥 없이 발언 자체로만 보면 반지성주의적으로 보이는 발언들도 저런 학문적 배경에서 지나치게 논리학적, 수사학적 과정에 중점을 두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철학에 기반한 중세 스콜라 신학을 비판하는 내용이고, 루터의 총괄적인 자세는 즉, 이성을 동원하여 열심히 독서와 학문을 통해 지식을 얻되, 그 지식이 마음 자체로 느끼는 신앙, 즉 '벼랑에 몰렸을 때 눈 딱 감고 믿고 뛰어들 만한' '''원초적인 믿음'''을 가지는 데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루터의 신학관 또한 르네상스 전반의 금욕에 대한 경멸과 삶의 쾌락을 악이 아닌 하나님과 인생의 선물로 보는 태도 또한 이어받았으며, 무엇보다 본인의 성격 또한 엄숙함이나 절제, 금욕주의와 거리가 먼 호탕한 동네 형님에 더 가까웠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이 공유하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 신학관의 핵심적인 전제가 '[[교황]]이고 [[주교]]고 나발이고 우리 전부 다 [[원죄]] 때문에 똥밭에서 뒹구르고 있는 똑같은 돼지 새끼들일 뿐이고, 이 똥밭의 유일한 구세주가 [[예수]]이며, 나머지 교회 구조 교리 이딴 건 다 잡스러운 옵션일 뿐이고, [[원죄]]를 지고 태어난 인간이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와중에서 음악이나 음주, 결혼에 대한 루터의 발언들을 읽어 보면 '어차피 주님 없이는 우리 전부다 다 이 무한한 똥밭(즉, 찌들고 더러운 속세의 유한한 삶)에서 영원히 갇혀 있으니 주님의 구원을 받기 전에는 걍 그러려니 하고 똥밭을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낫다'라는 식의 의견을 피로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다른 한 축인 칼뱅과 칼뱅주의가 금욕과 절제를 통해 저 똥밭에서 최대한 그나마 똥칠 덜 돼 있는 구석자리를 찾아서 거기서 버티자는 성향이라면, 루터는 그래봤자 똥밭이니 주님이 꺼내주시기 전까지 최대한 자세라도 편히 하고 누워 있자는 느낌이다. '''"[[방귀]]와 [[트림]]을 왜 참냐?"''' 같은 개혁적인(?) 발언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잠이 안 오면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다 또 잠이 안 오면 '''방귀 한방을 날리십쇼. 그럼 악마는 기겁해서 도망갑니다.'''"라며 방귀 유용성을 역설했고, 비텐베르크에서 본격적으로 개혁 활동을 펼 당시 멀리 로마 교황이 루터의 주장을 듣고 노발대발했다는 소문을 듣자 '''"여러분, 제가 비텐베르크에서 방귀를 뀌면 그 냄새가 [[로마]]까지 풍기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5267#0DKU|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0181&code=23111657|기사 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